주일설교
by 방송실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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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쁨에 들어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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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쁨에 들어오라 (눅 15:25-32) 사람은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전혀 다르게 반응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잔치를 여시는 장면입니다. 밭에서 돌아오던 맏아들은 집 가까이에서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게 되었지만, 그는 기뻐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섭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앞에서 그 자리에 선뜻 들어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전도 축제를 앞둔 지금, 오늘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우리에게 도전을 던지며 묻습니다. "너는 지금 이 기쁨 안으로 들어오고 있느냐?" 1. 하나님은 잔치 자리에 늘 초대하시며 (권하는) 분입니다. (28절) 맏아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쏟아냅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라고 화내며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꾸짖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직접 밖으로 나와 맏아들을 권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모든 이들을 천국 잔치로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머뭇거릴 때도 직접 찾아오셔서 기쁨의 자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2. 하나님은 맏아들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주십니다. 아버지는 맏아들의 분노를 꾸짖지 않습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틀렸다고 하지 않으시고, 먼저 관계를 확인해 주십니다. 그리고 조용히 아버지의 마음을 열어 보이십니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아들을 보며 기쁨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그 깊은 사랑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비난과 정죄가 아닌 사랑과 이해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3. 하나님은 맏아들도 결국 기쁨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버지의 잔치 초청은 둘째 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밖에 서 있는 맏아들을 위한 잔치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맏아들도 이 기쁨 안에 함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래 믿어온 사람도, 삶에 지친 사람도, 전도에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도 이 기쁨의 자리에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헤븐 라이프 축제는 새로운 영혼만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쁨에 우리 모두가 함께 들어가는 기쁨의 축제입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앞에서 맏아들처럼 머뭇거리며 서 있는 모습이 있지는 않았나요? 2. 어떤 방법으로 함께 헤븐 라이프 축제에 참여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 들어가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봅시다.
by 방송실
202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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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던 자리에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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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던 자리에서 나오다 (요 4:28-30,39-42)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전도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전도는 사람을 억지로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시하다는 말을 발표(presenting)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즉, 전도는 내가 만난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 주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 나온 사마리아 여인이 마치 그와 같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소개(발표)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녀는 과거 사람들을 피해 다녔던 자였지만, 대중들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담대히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놀라운 복음의 역사입니다. 1. 하나님은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하셔서 전도자로 세우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삶의 여러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과거를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18절) 당시 사회에서 이것은 큰 수치와 상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아시고 받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이후 그녀는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말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아시는 분입니다.” (29절) 예전 같으면 숨기고 싶었을 과거였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도구로 쓰임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상처 입은 사람을 치유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즉시) 예수님을 전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놀라운 행동을 합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8절) 물동이는 그녀가 우물에 온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녀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내려놓고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신 완전한 구원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인생의 갈증이 있습니다. 그 갈증을 해결하실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3. 하나님은 한 사람의 증언을 통해 (공동체)의 믿음을 세우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0절) 한 사람의 증언이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했습니다. 여인의 말로 말미암아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39절) 사람들은 처음에는 여인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께 나왔지만, 나중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믿게 됩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고, 그 만남을 통해 공동체의 믿음이 형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증언을 사용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역사하십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어떤 갈증이나 상처를 가지고 있었으며, 예수님이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키셨습니까? 2. 내가 만난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내 물동이를 즉시 내려놓고 전해봅시다.
by 방송실
202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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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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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라 (요 1:43-51)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전도를 잘할 수 있을까?” 많은 성도들이 전도를 어렵게 생각합니다. 말을 잘해야 할 것 같고,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할 것 같고, 상대를 설득해야 할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전도는 생각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전도의 가장 아름답고 단순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한 말입니다. “와서 보라.” 이 짧은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전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1. 전도는 예수님을 먼저 (만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본문 4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빌립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르라.” 빌립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에게 그 기쁨을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빌립은 단순하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만났소.”(45절) 전도는 특별한 기술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났고, 그 만남으로 내 삶이 달라졌기 때문에 받은 은혜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2. 전도는 논쟁이 아니라 (초청)입니다. 빌립의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이 말에는 비판과 의심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나사렛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빌립은 논쟁하지 않습니다. 설득하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는 단 한마디를 합니다. “와서 보라.”(46절) 이것이 전도의 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와 신앙에 대해 이미 여러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오해도 있고, 편견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논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사람의 마음은 더 닫히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도의 가장 좋은 방법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와서 보라.” 교회에 한번 와 보십시오. 예배를 한번 드려 보십시오. 예수님을 한번 만나 보십시오. 이처럼 전도는 논쟁이 아니라 초청입니다. 3. 한 번의 초청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초청으로 나다나엘은 결국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의 정직함을 아셨고,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모습까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이에 놀란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처럼 빌립의 “와서 보라”라는 작은 초청이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하나님은 이렇게 작은 초청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십니다. 예수님과의 한 번의 만남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빌립은 몰랐을 것입니다. “와서 보라”라는 한 마디가 이렇게 놀라운 일을 만들 줄은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한 번의 초청을 통해 큰 일을 이루셨습니다. 나눔 및 적용 1. 내가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되었거나 교회에 나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때 누군가의 작은 초청이나 도움이 있었습니까? 2. 내가 “와서 보라”라고 초청할 수 있는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초청해 볼 수 있을까요?
by 방송실
202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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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넘어 구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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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넘어 구원으로 (눅 17:11-19) 오늘 본문에는 나병환자 열 명이 등장합니다. 당시 나병은 사회와 공동체에서 완전히 격리되는 고통스러운 상태였습니다. 가족과도 떨어져 살아야 했고, 사람들 앞에서는 멀리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멀리서 소리를 높여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자세히 보면 단순히 병이 고침받은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치유를 넘어 구원으로 나아가는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1. 예수님은 우리 삶에 (치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중에 모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열 명이 모두 치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고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여러 가지 아픔과 문제가 있습니다. 질병의 문제, 관계의 갈등, 마음의 상처와 같은 아픔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치유와 회복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시는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2. 치유를 받은 모든 사람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열 명이 치유를 받았지만 예수님께 돌아온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질문에는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합니다. 어려울 때 기도하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는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과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3.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구원을 경험하고, (구원)을 전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열 명 중 한 사람은 자신이 나은 것을 보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 명은 모두 치유를 받았지만 이 한 사람은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치유는 몸의 회복이지만 구원은 삶 전체의 회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라”고 말씀하시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도록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치유와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그 은혜에 머물지 않고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나았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자신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소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돌아온 사람은 결국 그 은혜를 전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치유 이후에 주님께 감사하며 돌아온 경험이 있습니까? 2. 이번 주에 내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릴 한 가지 실천은 무엇입니까?
by 방송실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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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이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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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이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사도행전 2:46-47) 오늘날 교회는 이전보다 더 많은 프로그램과 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도 간의 관계는 점점 약해지고, 신앙은 개인화되고 있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삶을 나눌 자리가 부족한 시대입니다. 초대교회는 거대한 건물도, 체계적인 프로그램도 없었지만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 비결은 단순했습니다.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모였기 때문입니다. 함께 모이고, 함께 나누며, 함께 울고 웃는 공동체가 교회를 살렸습니다. 교회는 주일 예배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삶을 나누는 공동체가 살아날 때 교회도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어떻게 교회가 살아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목장이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1. 서로 모이기를 (힘쓸) 때 교회가 살아납니다(46절).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여기서 ‘날마다’는 매일 모였다는 의미를 넘어 공동체가 삶의 중심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바쁘고 분주하여 매일 모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빈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시간이 남아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살기 위해 시간을 내어 모이는 것입니다. 모든 목장이 같은 날 모일 필요는 없습니다. 형편에 따라 가능한 시간에 모이면 됩니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 모임, 포기하지 않는 모임이 중요합니다. 모이기를 힘쓸 때 공동체는 살아나고, 공동체가 살아날 때 교회가 살아납니다. 2. (밥)을 함께 먹을 때 공동체가 깊어집니다(46절). 초대교회는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삶의 나눔입니다. 밥을 먹다 보면 상대방의 이야기도 듣게 되고, 기도 제목도 알게 됩니다. 때로는 기쁨도 나누고, 눈물도 나누며, 서로의 짐을 함께 지는 공동체로 세워지게 됩니다. 따라서, 목장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설교를 듣는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 삶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사람은 혼자 신앙생활을 할 때 쉽게 지치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함께 나눌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목장이 살아날 때 교회는 힘을 얻습니다. 3. 목장이 살아날 때 하나님이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십니다(47절). 초대교회 공동체가 이렇게 모이고 나눌 때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부흥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입니다. 우리는 숫자를 늘리려 애쓰기보다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데 힘써야 합니다. 성령님이 충만히 임하시면 목장이 살아나고 관계가 따뜻해지며 교회에 생명이 흐르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시고 교회를 채우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모이고, 나누고, 서로를 세우는 것입니다. 더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나눔 및 적용 1. 요즘 내 신앙이 개인화되고 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2. 이번 주 나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예: 목장 모임 적극 참여, 식사 나눔, 한 사람 위해 기도/연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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